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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지혜의 말씀
HOME > 불교가르침과 신앙생활 > 부처님 지혜의 말씀

  • 1. 반야심경(般若心經)
  •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관자재보살이 깊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오온이 모두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났느니라.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증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며, 수.상.행.식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사리자여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불구부정 부증부감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느니라.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그러므로 공 가운데 색이 없고, 수.상.행.식도 없으며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안.이.비.설.신.의가 없고, 색.성.향.미.촉.법도 없으며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무명 역무무명진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며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무상정등정각의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이며, 밝은 주이며, 위없는 주이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주니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이제 반야바라밀다주를 설하리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반야심경
    가자 가자 어서 가자 피안으로 가자 깨달음을 위해 반야심경
  • 2.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 관세음보살 보문품 제25 게문
  • 모든 중생을 대표하는 무진의보살이 석가세존께
    "세존이시여, 이 보살을 어떠한 인연으로 관세음이라고 부르나이까?"
    라는 물음에 석가세존의 답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만일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당할 적에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보고,
    항상 마음에 지녀서 잊지 않으면 모든 괴로움을 능히 멸하리라."

    또한 석가세존께서는 관세음보살이 갖춘 공덕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이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생각하면 그들이 겪고 있는 온갖 재난으로부터 구제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계속해서 석가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중생이 주체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게 되어 지치거나 위험에 빠졌을 때
    관세음보살은 그의 신통력과 지혜로써 중생이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구제해 주느니라.
    보살은 신통하고 묘한 힘을 고루 갖추고 지혜의 방편까지 널리 닦아서
    시방세계 어디든지 갖가지 몸을 나타내지 않는 곳이 없어,
    갖가지 험하고 사악한 세계, 즉 여러 가지 지옥계, 아귀계, 축생계
    그리고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차츰 차츰 다 없애 버리느니라."

    게송은 계속되어 석가세존께서는
    "관세음보살의 참되고 청정한 관찰력으로 중생을 연민과 자애로써 받아주느니라"라고 칭찬하신다.
    또 관세음보살은 다섯 가지 다양한 음성을 가지고 계신다.
    이것은 설법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묘한 음성, 세간을 관하는 음성, 범천의 음성, 해조의 음성, 세간의 속된 음성, 그 모두에 뛰어나다.
    그러므로 언제나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의심하지 말라.
    우리가 그를 믿든 말든지 간에 의지처와 위안을 준다."
    석가세존께서는 게송을 다음과 같이 마치셨다.
    "관세음보살은 여러 가지 공덕을 고루 갖추고 자비로운 눈으로 중생을 지켜본다.
    그리고 그가 주는 은혜는 바다와 같이 한량없거니
    관세음보살에게 머리를 조아려 경배하여라."

    그때 회중을 대표한 지지보살이 석가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중생으로서 이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듣는 이가 있다면 커다란 덕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경문은,"석가세존께서 이 보문품을 말씀하실 때에 팔만사천의 중생들이 다 같이
    완벽한 깨달음 무등등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켰느니라."라고 불경의 끝을 맺었다.
  • 3.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 명자공덕품(名字功德品) 제6
  • 불타는 제자인 가섭에게 설법하고 계시다.
    불타는 대반열반경의 공덕을 펼치시며, 이 경문을 여덟 개의 강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을 받아들이는 큰 바다와 비교하고 계시다. 라고
    불타는 이 경문의 우수성을 몇 가지 예를 들면서 설명하고 계시고
    삼보(불, 법, 승)의 영원한 실존을 명언하고 계시다.

    그때 여래는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여 그대는 참으로 이 경문의 하나 하나의 문자와 구절,
    그리고 장에 깃들어 있는 공덕을 받아야 하느니라.
    이 불경의 이름을 들은 선남자와 선여인은 모두 마음이 사악취에 태어나는 일이 절대로 없느니라.
    그러한 이유로 이와 같은 공덕을 가진 경문, 혹은 모든 불타가 얻은 공덕을 나는 지금 설법하겠노라."

    가섭보살이 석가세존께 말씀 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이 경문을 무엇이라고 이름 지어야 합니까?
    어떤 식으로 보살마하살이 이것을 받들어야 합니까?"

    석가세존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경문을 이름 지어 대반열반경이라고 하느니라. 첫 마디 '대'도 공덕, 중간 말 '반'도
    끝마디 '열반'도 공덕이 있으며 깊은 뜻을 가진 것이니라.
    어디를 보아도 그 문장은 공덕으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이 대반열반은 완전히 갖추어진 것이고, 깨달음에 이르는 도리의 길로 인도하는 것을 설법하는 것이니라.
    그리고 굳게 보물을 내장하고 있으며 완벽하고 빠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니라.
    너는 잘 들어야 하도다. 나는 지금 바로 설법을 하겠노라.
    선남자여, 내가 말한 '대(大)'란 항상(常)이라는 뜻이니라.
    그것은 여덟 개의 큰 강의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도 그 바다가 변하지 않음과 같도다.
    이 경문은 그와 같이 사람이 가진 모든 번뇌의 속박을 파괴하고 모든 마성을 항복시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하여 대반열반에 흘러 들어가 받아들여지도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름 지어 대반열반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경문은 모든 의술을 받아들인 훌륭한 치료법을 가진 의사와 같으니라.
    여래도 그와 같으니라. 지금까지 설법된 모든 훌륭한 가르침과 모든 밀교는 대반열반에 포함된다.
    그 까닭에 이 경문을 이름 지어 대반열반이라고 한다.
    선남자여, 예를 들어 농부는 봄에 씨를 뿌려 좋은 결실을 거둬들일 때까지 항상 희망이 있다.
    그리고 결실을 거둬들이면 더 이상 걱정이 없어진다.
    선남자여, 모든 중생도 그와 같다. 다른 경문을 공부하면 결코 탐구가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가 된다.
    하지만 한 번 이 대반열반의 지혜를 깨달으면 다른 불경을 찾는 일은 없다.
    이 대반열반은 중생을 모든 번뇌에서 풀어주고 피안으로 건네준다.
    선남자여, 이 세상의 모든 발자국 중에서 코끼리의 발자국이 가장 크고 훌륭하다고 하는데 이 경문도 그와 같다.
    모든 경문이 이르게 해 주는 삼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에 이르게 해 준다.
    선남자여, 예를 들어 가을에 밭을 갈기를 제일로 하는데 이 경문도 그와 같이 제일 으뜸이다.
    선남자여, 모든 약 중에서 맛이 최고인 제호가 제일이듯이
    이 경문은 중생의 걱정과 망상을 잘 고친다. 이 대반열반을 모든 것의 으뜸으로 한다.
    선남자여, 예를 들어, 대반열반은 달고 맛있는 첨수(甛酥)가 여덟 가지 미각을 갖춘 것과 똑같다.
    무엇으로 법(가르침)의 여덟 가지 미각으로 하느냐 하면
    첫 번째로 상(常), 두 번째로 항(恒), 세 번째로 안(安), 네 번째로 청량(淸凉),
    다섯 번째로 불노(不老) 여섯 번째로 불사(不死), 일곱 번째로 무구(無垢), 여덟 번째로 쾌락(快樂)이도다.
    이것을 여덟 가지 미각으로 한다.
    이 여덟 가지를 다 갖추었다. 이 까닭에 대반열반이라고 한다.
    여러 보살마하살이 이 대반열반 속에 머물고 곳곳에 열반을 나타낸다.
    이 까닭에 이름 지어 대반열반이라고 한다.
    가섭이여, 선남자와 선여인이 만약 이 대반열반의 공덕으로 인하여 열반을 얻고자 한다면
    바로 이와 같이 여래(佛), 가르침(法), 승(僧)은 영원히 변함이 없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 대반열반경 순타품(純陀品)
  • "훌륭한 순타여
    그대는 불타의 신묘한 뜻을 이해하였도다. 그 이름에 나타나 있듯이
    불타의 진실이라는 가장 심원한 뜻을 이해하여 이 세상에서 명성과 덕과 서원을 이루었도다.
    순타여 태어나기 어려운 사람으로 태어나고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을 만나 믿음을 일으켜,
    가르침을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더욱이 그대는 불타의 입적에 즈음하여 마지막 공양을 올리는 기회를 얻었고
    불타는 그것을 받아 주셨도다.
    그대는 지금 하기 어려운 일을 성취했도다. 귀한 보시행을 다 하였도다.
    우리는 가을 하늘에 빛나는 맑은 보름달을 바라보듯이 그대를 귀히 여기고 우러러 경의를 표하노라.
    장하도다 순타여, 그대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정신은 불타의 참마음이도다.
    그대는 참으로 여래의 아들이며 세존의 아들인 라훌라와 같느니라."

    이때 순타는 마치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갑자기 되살아나신 것 같은 기쁨으로
    얼굴을 활짝 피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불타에게 공손히 절을 올리고 게를 읊었다.
    "탐욕과 노여움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타오르는 불길을 스스로 자각하여 없애므로
    저는 삼독을 떠날 수 있었고
    귀하게도 얻기 어려운 금강신(金剛身)을 얻었나이다.
    여래께서는 우담바라화의 꽃처럼 만나기 어렵나이다.
    불타는 우리들에게 선근(善根)을 닦도록 인도하시어
    우리들이 만들어 내는 아귀와 같은 괴로움을 없애 주시나이다.
    여래께서 속세의 업으로 더러워지시지 않음은
    깨끗한 연꽃이 진흙탕물 속에서 피어나는 것과 같고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불타를 만나기 더욱 어려운 것은
    눈 먼 거북이가 바다에 떠있는 나무의 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나이다.
    여래께서는 우리 교단에 계셔서 늘 법문을 설법하시며
    그것은 수미산이 바다 속에 우뚝 솟은 것과 같이 영원하시도다.
    항상 우리들의 번뇌와 괴로움이라는 어둠을 없애 주심은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구름을 없애고 널리 세상을 비추는 것과 같나이다.
    석가세존이시여 부디 이 세상의 무릇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믿음을 키우기 위해
    오래도록 이 세상에 머물러 모든 사람의 생사의 괴로움을 없애 주시옵소서."

    이때 석가세존께서 순타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불타가 세상에 나타났을 때 불타를 만나서 믿음을 일으키고,
    불타에게 마지막으로 공양을 드리는 자로서
    보시행을 다하는 것은 하기 어려운 일이나 그대는 이를 잘해낸 것이로다.
    그 해낸 행복을 기뻐하되 절대로 나의 열반을 슬퍼해서는 아니 된다.
    또 내가 오래도록 이 세상에 머물기를 청해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너는 불타의 깨달음의 경지를 이해하고
    이 세상에서의 불타의 생명(육체)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것은 우주만물의 본질과 같느리라."

    계속해서 게송으로 설법하시기를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멸하며
    수명이 무량하게 보여도 반드시 끝이 있느니라.
    번성한 것에도 반드시 쇠퇴해지고 만남에도 반드시 이별이 찾아오느니라.
    사람에게 죽음이 있듯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윤회의 괴로움은 끊임없고 그치지 아니하는 법이니라.
    사람이 생사를 되풀이 하는 삼계(三界)는 영원하지 아니하며 모두 영원히 즐거운 것이 아니니라.
    진리의 본성은 진여(여래)이며 그 외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으로 인하여 생긴 고정적인 실체가 없는 공(空)인 것이니라.
    불타의 진리 외에 이 세상이 정한 규칙(법)은 시대나 조건에 따라 변하며
    영원하지 아니 한 것이므로 괴로움을 생기게 하느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늙음과 병듦, 그리고 죽음을 면할 수 없으며 슬픔과 괴로움을 겪고 멸하느니라.
    번뇌에 사로잡히는 일은 누에고치처럼 자신의 몸을 스스로 감싸버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몸은 괴로움이 모이는 것이니 어떻게 이것을 즐거움으로 할 수 있겠느냐?
    세속적인 욕심을 떠나게 하는 올바른 기도는 진실한 길을 깨닫게 하며
    집착을 떠난 자는 반드시 열반(상락아정)을 밝힐 것이니라.
    이 까닭에 나는 이 삶으로써 이 세상에서 피안에 이르러 괴로움에서 떠나
    이 몸 그대로 열반의 즐거움을 받는 것이니라."

  • 대반열반경 고귀덕왕보살품(高貴德王菩薩品) 제22 - 청법(聽法)
  • 불법(佛法)에 귀를 기울여 얻어진 좋은 인연으로 대반열반경의 참 뜻을 터득할 수 있는 것인가?
    대반열반경을 들은 공덕으로 모든 중생에게는 불타를 믿는 신념이 갖추어지느니라.
    신념을 얻으면 기꺼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육바라밀을 행하여
    모든 사람이 번뇌를 벗어난 깨달음의 단계에서 여러 경지를 거쳐서 드디어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대반열반경으로 인도하는 여러 가지 선법을 듣게 되는 것은
    모두 올바른 가르침(불법)에 귀를 기울이는 좋은 인연이 있는 까닭이다.

  • 대반열반경 여래성품(如來性品) 제12 - 진법(眞法)
  •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에 임하여 내가 열반경을 설법하는 모습을 통해서
    영원하고 불멸한 깨달음을 상징하는 불탑을 우러러 보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진리 그 자체인 나의 진리의 몸인 법신에게 귀의할 생각을 일으키게 하여 예배와 공양을 올리도록 하겠노라.
    이와 같은 중생들을 위하여 내 법신을 의지할 곳으로 하겠노라,
    중생은 삼보일체의 이치를 모르는 까닭에 자칫하면 진실이 아닌
    사악하고 옳지 않은 거짓 법에 의지하기 쉽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지금 한 단계씩 나는 진실된 가르침(眞法)을 설법하겠노라.
    만일 승려처럼 보이나 참된 승려가 아닌 자에게 의지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참된 의지가 되는 승려가 되겠노라.
    삼보는 일체인 고로 나는 절대로 세 가지(불, 법, 승)에 구별을 두지 않는
    유일한 의지처가 되느니라.
    눈이 있어도 진실을 보지 못하는 생맹(生盲)의 중생을 위하여 내가 그들의 눈이 되겠노라.
    여러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을 위하여 내가 그들의 진실한 귀의처가 되겠노라.

  • 대반열반경 고귀덕왕보살품(高貴德王菩薩品) - 사전도(四顚倒)
  • 일체 중생은 항상 오욕(五欲) 때문에 속박을 당해도 사유를 해서 해탈을 얻는다.
    그런 뜻을 가진 까닭에 제법에 무상(無常), 무락(無樂), 무아(無我), 부정(不淨)을 볼 수가 있다.
    이와 같이 보게 되면 사도(四到)를 끊는다. 이 의(義)를 가진 고로 사유의 인연은 대반열반경으로 다가갈 수 있다.
    생(生), 노(老), 병(病), 죽음(滅) 사종(四種)의 상(相)의 모습이 있다. 이 네 가지 상(相)으로
    일체의 범부중생들은 삼계의 견혹을 끊는 성문인 수다항에 이르기까지 큰 고뇌를 일으킬 것이다.
    만일 생각을 깊이하고 잘 사유하는 자는 이 네 가지를 만난다 할지라도 큰 고뇌를 일으키지 않고,
    이 의(義)를 가진 고로 사유의 인연은 대반열반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경문의 진의를 접하면 신앙하면서 왜 의심이 생기는가? 라는 의념(疑念)도 자연히 해소된다.
    수다항과는 삼계의 견혹을 끊는 성문이라 되어 있기 때문에 이념적, 관념적으로는 일단 이해할 수 있어도
    아직 진실한 곳까지 철저히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의념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사유를 깊이했을 때 비로소 철저할 수가 있다.
    영훈(靈訓)에서 <접심은 사유로 시작되지만 제멋대로 사유해서 길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청법의 인연에 의해 바르게 사유해야 비로소 바른 것에 다가갈 수가 있다.>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열반의 이치를 거꾸로 보고, 무상. 무락. 무아. 부정이라고 무명 속의 번뇌에 빠져
    일천제(一闡提)가 되어 간다. 이것을 사전도(四顚倒)라 한다.

  • 대반열반경 사자후보살품(獅子吼菩薩品) - 파악생선(破惡生善)
  • 계(戒)를 닦고 익히는 것은 몸의 고요하고 맑은 적정(寂靜)을 얻기 위함이다.
    삼매를 닦고 익히는 것은 마음의 적정(寂靜)을 얻기 위함이다.
    지혜를 닦고 익히는 것은 의심을 깨뜨리기 위함이다.
    의심을 깨뜨림은 도(道)를 닦고 익히기 위함이다.
    도(道)를 닦고 익히는 것은 불성(佛性)을 보기 위함이다.
    불성(佛性)을 보는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위함이다.
    위없는 바르고 완전한 깨달음(無上正等正覺)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은
    무상(無上)의 대열반(大涅槃)을 얻기 위함이다.
    대열반(大涅槃)을 얻음은 중생 일체의 생사(生死), 일체의 번뇌(煩惱), 일체의 제유(諸有),
    일체의 여러 세계인 제계(諸界) 세간적인 진리를 끊기 위함이다.
    생사(生死)를 끊고 그리고 세간적인 생각을 끊는다는 것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의 가르침을 얻기 위한 것이다.

  • 대반열반경 사자후보살품(獅子吼菩薩品) 정(定)----접심(接心)의 간요(肝要)
  • 선남자여, 만일 선정(禪定-접심(接心))을 하지 않으면 세간의 일을 끝낼 수 없고,
    더구나 출세(出世)의 길에 있어서는 더 그렇다.
    만일 선정(禪定 - 접심(接心))이 없는 자는 평처(平處)에 거꾸로 떨어진다(顚墜).
    마음에서 부처님과 다른 법을 생각하는 심이법(心異法)의 이유로
    입으로 다른 말을 전하고, 귀로 다른 말을 듣고,
    다른 의미로 이해하는 심이의(心異義)를 얻게 된다.
    이상한 글자를 만들어, 손으로 이상한 글을 쓴다든지,
    다른 길을 가고 싶은 욕망에, 몸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삼매정(三昧定)을 수습하는 자가 있으면 크게 이익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게 된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법을 갖추어야 크게 이익을 본다.
    첫째는, 선정이요, 둘째로는 지혜이다.
    선남자여, 왕골을 베는 데 있어 단단히 잡고 단번에 베면 쉽게 베어지는 것처럼
    보살 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는 것도 이와 같도다.
    선남자여, 단단한 나무를 뽑을 때에 먼저 손으로 움직여주면 뒤에 뽑기 쉬운 것처럼
    보살의 선정과 지혜 정혜(定慧)도 또한 이와 같이 먼저 선정(접심)으로 움직이고 뒤에 지혜로써 뽑는다.
    선남자여, 더러운 옷을 빨 적에 먼저 잿물로 닦고,
    나중에 맑은 물로 씻으면 옷이 곱고 깨끗해지는 것처럼 보살의 정혜도 또한 이와 같다.
    선남자여, 먼저 독송을 하고, 뒤에 바른 뜻을 이해하듯이 보살의 정혜도 또한 이와 같다.
    선남자여, 가령 용맹한 무사가 먼저 갑옷으로 무장하여 단단히 자신을 장엄한 뒤에 진영을 막게 하면
    원수와 적을 잘 물리치는 것처럼 보살의 정혜도 또한 이와 같도다.
    선남자여, 예를 들어 기술이 뛰어난 장인이 도가니에 쇠붙이를 담고는 마음대로 구부리고 녹여버리는 것처럼
    보살의 정혜도 또한 이와 같도다.
    선남자여, 예를 들어 맑은 거울이 얼굴을 밝게 비추듯, 보살의 정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한 뒤에 씨를 뿌리 듯
    먼저 스승을 따르고 받아들인 뒤에 뜻을 사유하듯이
    보살의 정혜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으면 크게 이익이 된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아, 오근(五根)을 골라 받아들여 조섭(調攝)하여
    중생의 고통을 참고 견딘다.
    이른바 기갈, 한열, 후려치고 때림, 욕설을 퍼부음, 흉악한 짐승에 씹히고, 모기 등에 물려도
    항상 그 마음을 받아들여 게으르지 않고, 이익을 위해 옳지 않은 법을 행하지 않고
    세간 번뇌의 잘못된 생각에 빠져 더럽히지 아니하고, 모든 어긋난 이견 때문에 갈팡질팡하지 않는다.
    항상 나쁜 관념을 멀리하여 오래지 않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한다.
    중생을 성취시켜 이익하게 하려는 까닭이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으면, 네 가지 뒤바뀐 폭풍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고,
    수미산을 네 가지 바람으로 흔들어댄다 할지라도 움직이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도다.
    외도의 옳지 않은 스승 때문에 동요하지 아니하고, 제석당을 이전할 수 없음과 같도다.
    여러 사악한 요술로도 호리고 속이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항상 미묘하고 제일가는 안락을 받고, 여래의 깊고 비밀한 밀의(密義)를 이해하도다.
    즐거움을 얻으나 즐거워하지 않고, 괴로움을 만나도 괴로워하지 않으니,
    천상의 제천(諸天)과 세상 사람이 공경하고 찬탄하도다.
    분명하게 생사 및 생사 아닌 것을 보고, 진여법계와 만유의 실체법성을 잘 알아,
    몸에 상락아정의 법이 있다. 이것을 일컬어 대열반의 락(樂)이라 한다.
    선남자여, 선정의 모양(정상-定相)은 공삼매라 하며, 지혜의 모양(혜상-慧相)은 무원삼매라 하며,
    사의 모양(사상 - 捨相)이란 무상삼매라 일컫는다.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있어서, 선정의 때, 지혜의 때, 사(捨)의 때를 알고, 또한 때가 아님을 알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보리도(菩提道)를 잘 행한다고 일컫는다.

  • 대반열반경 고귀덕왕보살품 제22 - 대승을 위해 하고 이승을 위해 하지 마라.
  • 대열반에 있어서 상락아정의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먼저 남을 위해 하고 그런 후에 자신을 위해 한다.
    나아가 대승(大乘)을 위해 하고, 이승(二乘)을 위해 하지 말라.
    일체법에서 정말로 머무는 곳이 없어야 하고,
    또한 한결같이 일체법상(一切法相)에 집착하지 말라.
    모든 법(法) 가운데서 탐(貪)의 생각을 일으키지 말라.
    항상 법을 알고 법을 보는 생각을 일으키게 하라.
    이와 같이 지심으로 법(法)을 들으면,
    이 또한 일컬어 듣지 못한 것을 듣게 된다.

  • 대반열반경 고귀덕왕보살품 - 열반의 모습에 예배 공양하는 이유. 본존 건립의 의의
  • "불상 및 불탑을 만드는 일을 마치 제일 큰 엄지손가락과 같이
    항상 환희심을 내면 열반의 부동국(不動國)에 태어난다."고 그 주지가 분명하게 되어 있다.

  • 대반열반경 가섭보살품(迦葉菩薩品) - 여래의 공덕은 시방에 가득
  • 세상을 연민하시는 대의왕(大醫王)이여,
    지혜 그 자체이신 옥체는 열반의 심경에 머물고 계시다.
    무아법(無我法)속에
    "진실한 나 진아(眞我)"가 있음을 몸소 밝히신 까닭에
    더 없이 귀하신 부처님을 공경하며 예배(禮拜)를 드리고 받드나이다.
    깨달음을 얻고자 내는 발심(發心)과 끝까지 진력을 다하는 필경(畢竟)은
    두 가지이지만 별도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두 가지 마음은 귀하도다.
    완벽한 깨달음을 얻지 않고도
    남을 제도할 수 있는 까닭에
    나는 처음으로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첫 발심에 예배드리나이다.
    첫 발심이 이미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의 스승이 되어
    성문(聲聞)보다 연각(緣覺)보다 뛰어나시나이다.
    이와 같은 발심은 삼계를 초월한 것인 까닭에 최고라고 이름하나이다.
    여래의 공덕은 시방에 가득하다.
    범부들은 무지한 까닭에
    여래의 자비심을 찬탄하지 못하나

    내가 지금 여래의 자비심을 찬탄하며
    그에 보답하기 위하여 몸과 입의 두 가지로 선한 업을 행하리라.
    세상에 있어서는 친한 이들에게만 이익 되게 하나,
    여래께서 베푸시는 이익에는 친한 이와 원수를 가리지 아니 하실세
    항상 중생들을 위하시고, 자기 자신을 위하시지 않으시리.
    제가 그런 까닭에 여래의 청정한 업을 예배드리나이다.
    여래는 괴로움을 받아도 괴로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이다.
    여래께서는 중생이 받는 괴로움을 당신이 받는 듯
    당신의 괴로움으로 하시네
    중생을 위하여 지옥에 간다고 할지라도
    괴롭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시도다.
    여래께서는 자비심으로써 중생을 연민하시는 마음은
    친아들을 생각하시는 것과 같으리.
    세상 사람들은 모두 번뇌를 가지고 있으며
    무량한 죄와 허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와 같은 죄와 허물은
    부처님께서 초발심으로 잘 소멸하실 수 있나이다.
    오로지 많은 부처님만이 부처님을 잘 찬탄하시며.
    부처님을 제외하고 부처님을 찬탄하는 이는 없으며.
    저는 지금 부처님의 자비심을 찬탄하나이다.
    소위 여래는 자비하신 마음으로 세간에 오시네.
    여래는 바로 자(慈)이시며
    훌륭한 법을 펼치시는 대법취(大法聚)이시기 때문에
    이것으로써 중생을 잘 제도하시나이다.
    여래는 바로 최상의 참된 해탈 그 자체이며
    해탈은 곧 대열반이도다.

  • 대반열반경 고귀덕왕보살품 제22 – 부동국(不動國)에 태어나다
  • 이 절에서 불타는 "어떻게 하면 부동국에 태어날 수 있는지"라는 무외보살의 질문에 대답하신다.
    그때, 무외보살이 팔만사천의 많은 보살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복장을 단정히 하고 무릎을 꿇어 합장하고 석가세존께 말씀을 올리기를,
    "석가세존이시여, 이 세상의 중생이 어떤 좋은 인연을 만들면 저 부동국에 태어날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곳에 머무는 보살은, 어떤 선업을 쌓아 지혜를 완성하며,
    사람들 중에서 상왕(上王)으로서 숭배되는 위대한 덕을 갖추며
    모든 수행을 닦으며 모든 일에 신속히 대응하는 역량을 가지며,
    그리고 가르침을 들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입니까?"

    그때 석가세존께서는 게송으로 가르침을 말씀하시기를
    "중생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 모든 지켜야 할 계율인 금계(禁戒)를 굳게 지키며,
    불타의 미묘한 가르침을 이어받는 자는 바로 부동국에 태어난다.
    남의 재물을 훔치지 않고, 항상 모든 이에게 베풀고, 절(招提僧坊)을 세우면 바로 부동국에 태어난다.
    남과 자신을 위해 이득을 구하며 두려움이 없고, 말을 삼가하여 거짓말(妄語)을 하지 않으면 부동국에 태어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 받아 전하는 선지식을 해치는 일이 없고,
    악한 무리를 멀리하여 말을 할 때 늘 화합을 이루는 말을 하면 부동국에 태어난다.
    모든 보살들처럼 항상 나쁜 말 악구(惡口)를 하지 않고,
    자신이 설법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람들이 듣기를 바라면 부동국에 태어난다.
    혹은 사람들이 여가를 즐겨 농담할 때에도 적절하지 않는 말을 하지 않고
    말과 행동을 삼가서 항상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을 사용하면 부동국에 태어난다.
    남이 이득을 얻는 것을 보고 늘 환희심을 일으키며 질투와 번뇌를 갖지 아니 하면 부동국에 태어난다.
    중생을 괴롭히지 않고 늘 자비심(慈悲心)을 일으켜
    남을 인도하는데 잘못된 수단을 쓰지 않으면 부동국에 태어난다.
    그릇된 견해로 조상님, 부모, 부처님께 대해 망언을 하지 말라.
    그와 같은 견해를 갖지 않으면 부동국에 태어난다.
    만일 남의 이익과 행복을 바라는 이유로 매일 이 경문을 올리면 부동국에 태어난다.
    만일 위없는 진리로의 길을 구하기 위하여
    항상 하루를 정해 재가신도가 지켜야 하는 여덟 가지 계율 팔계재(八戒齊)를 지키면 부동국에 태어난다.
    일상생활에서 십중금계(十重禁戒)을 범하는 것처럼 불교의 계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 함께 행동하지 않고
    대승의 가르침을 비방하는 자를 질책하면 부동국에 태어난다.
    불당과 승려의 장식물인 승만물(僧蔓物)을 파괴하지 않고 부처님께 바쳐진 재물을 잘 지키며
    부처님을 모시어 승려가 사는 곳을 깨끗이 청소하면 부동국에 태어난다.
    만약 불상 및 불탑을 만들기를 엄지손가락으로부터 꼽듯이 제일 먼저 하며
    항상 기쁜 환희심을 일으키면 부동국에 태어난다.
    만약 이 경문을 위하여 자신의 몸이나 재물을 설법자에게 바치면 부동국에 태어난다.
    만약 모든 부처님의 깊고 미묘한 가르침을 잘 듣고 쓰고 받아 지니거나,
    암기해서 독송해 올리면 부동국에 태어난다.

  • 대반열반경 성행품(聖行品)
  • 대반열반경은 최고의 맛인 제호와 같이 최상이라는 것을 듣고 은밀히 사념을 했습니다.
    만일 이 경을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주 어리석어서 착한 선심(善心)이 있을 리가 없다고 합니다.
    "저는 내 몸의 가죽을 벗겨 종이로 하고, 피를 내서 먹물로 하고, 골수로써 물로 하고,
    뼈를 깎아 붓으로 하고, 이 위대한 열반경을 베껴 사경하고 잘 통달하여
    교론통리(敎論通利)해서 깊고 넓은 참된 지혜를 개발하여
    널리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그 진의(眞義)를 명백히 하겠다고 각오하는 바입니다."
    재물을 탐하고 집착하는 자에게는 재물을 베풀고, 후에 열반경을 읽을 것을 권유하고,
    또한 존귀한 자에 대해서는 애어(愛語)와 경의를 나타내고
    범부나 서민에게는 위세로서 대하고,
    교만한 자를 위해서는 낮은 자세로 기쁘게 하여 열반경으로 교도하겠습니다.
    만일 대승을 비방하는 자가 있다면 지혜의 위력으로 항복시키고,
    그런 후에 권유하여 대반열반경을 독송 시키겠습니다.
    만일 열반경을 받아 지니는 자가 있다면 스스로 찾아가 그 사람을 존중하고 찬탄하며
    한 사람이라도 많이 이 열반경을 익히고 배울 것을 권유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박복한 사람은 법(法)을 들을 수 없다.
    만일 무량의 제불(諸佛)을 잘 공양하고 공경하면 실로 대반열반경을 들을 수 있다.
    대덕(大德)한 사람은 이와 같은 '중요한 것'을 들을 수가 있다. 야비한 범부는 들을 수가 없다
    모든 제불(諸佛)의 심심비장(甚深秘藏)은 여래성의 심의(深義)한 까닭에 일컬어 '대사(大事)'라고 한다.

  • 대반열반경 범행품(梵行品)
  • 대자(大慈)로 중생을 불쌍히 여긴 까닭에 나에게 귀의케 한다.
    여러 독화살을 잘 빼는 고로 대의왕(大醫王)이라 칭하게 한다.
    세간 의료의 치료는 병을 고칠지는 몰라도 되돌아서 다시 생긴다.
    여래의 치료는 완전하게 끝까지 필경(畢竟)해서 다시 생기지 않는다.
    세존은 감로하는 약으로 여러 중생에게 베푼다.
    중생 이미 복용을 마쳤다면 죽지도 않고 또한 태어나지도 않는다.
    여래가 지금 우리를 위해 대열반을 연설하신다.
    중생들이 비장(秘藏)을 들으면 불생멸(不生滅)을 얻는다.

  • 대반열반경 사자후보살품(獅子吼菩薩品) – 법을 보는 자는 부처를 본다.
  • 일체 중생 십이인연(十二因緣)을 볼 수가 없다. 고로 윤전(輪轉)한다.
    누에가 고치를 쳐서 스스로 옭아매어 스스로 죽는 것 같이 일체 중생도 또한 이와 같도다.
    불성을 보지 못하는 고로 스스로 업을 지어서
    생사에 윤회하는 일, 마치 공을 때리는 것과 같다.
    "만일 사람이 십이인연을 본다고 한다면 이 법(法)을 보게 된다. 법을 보는 자는 부처(佛)를 본다.
    부처란 불성(佛性)이다. 왜냐하면 일체 제불은 이것을 성품으로 하기 때문이다."
    선남자가 십이인연을 보는 지혜로 대략 4종이 있는데,
    첫째가 하(下), 둘째가 중(中), 셋째가 상(上), 넷째가 상상(上上)이다.
    하(下)의 지혜를 보는 자는 불성을 보지 못하고, 못 보는 고로 성문의 길을 걷는다.
    중(中)의 지혜를 보는 자도 불성을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한 까닭에 연각도(緣覺道)를 걷는다.
    상(上)의 지혜를 보는 자는 볼지라도 터득하지를 못한다. 정확하게 못 보므로 십주지(十住地)에 머문다.
    상상(上上)의 지혜를 보는 자는 터득한 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길을 얻는다.
    이런 뜻을 가진 까닭에 십이인연을 일컬어 불성이라 한다.
    불성(佛性)이란 제일의 공(空)이며
    제일의 공(空)이란 일컬어 중도(中道)라 한다.
    중도란 일컬어 부처라 한다.
    부처란 일컬어 열반이라 한다.

  • 대반열반경 사자후보살품 – 일체 중생 모두 불성이 있다.
  • 대자대비(大慈. 大悲)란 일컬어 불성이라 한다. 불성은 일컬어 여래라 한다.
    대희대사(大喜. 大捨)란 즉 불성이다. 불성이란 이 또한 여래이다
    대신심(大信心)이란 불성을 말한다. 불성이란 즉 여래이다.
    이와 같은 고로 설하기를 "일체중생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한다.
  • 4. 불타열반략설교계경(佛陀涅槃略說敎戒經) 전생출리(轉生出離)
  • 삼독, 오욕의 번뇌를 억제하여 욕심, 게으름, 분노, 교만, 아첨 등의 못된 것을 없애고
    보살, 연각, 성문 등의 대역량의 사람이 일으키는 8종의 사념(思念) 팔대인각을 닦을 수가 있다고 설해져 있다.
    마음은 사람을 부처로 만드는가 하면 축생으로도 만든다.
    번뇌하면 귀신이 되고 깨달으면 부처가 되는 것도 모두 이 마음가짐에 있다.
    이 가르침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나를 만났어도 나를 만나지 않은 것이 되며,
    나와 함께 있으면서도 나와 멀리 있게 되는 것이다.
    번뇌의 적을 쫒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육신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음식으로 지탱되는 것이기 때문에 병이 나고 상처 입고
    망가지는 일이 멈추지를 않느니라.
    부처는 육신이 아니다. 깨달음의 지혜이다.
    육신은 여기서 멸해도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가르침과 도(道)에 살아 있다.
    이 가르침을 듣고, 자기 본위의 마음을 멸해서,
    부처님 본위의 마음으로 바꾸어 다시 태어나는 것이야 말로 열반이며 진실한 행복의 길이다.
  • 5. 잡보장경(雜寶藏經)
  •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자기가 아는 대로 진실만을 말하며, 주고받는 말마다 악을 막아
    듣는 이에게 편안과 기쁨을 주어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제 몸 위해 턱없이 악행하지 말고, 성내거나 질투하지 말라.
    이기심을 채우고자 정의를 등지지 말고,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위험에 직면하여 두려워 말고, 이익을 위해 남을 모함하지 말라.
    객기를 부려 만용하지 말고, 허약하여 비겁하지 말며
    지혜롭게 중도의 길을 가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모습이니
    사나우면 남들이 꺼려하고, 나약하면 남이 업신여기나니,
    사나움과 나약함을 버려 중도를 지켜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야 한다.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임금처럼 위엄을 갖추고, 구름처럼 한가로워야 한다.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야 한다.
    때와 처지를 잘 살필 줄 알고, 부귀와 쇠망이 교차함을 알라.
    이것이 지혜로운 불자의 삶이니라.
  • 6. 중도(中道)
  • 부족함이 없는 부자였던 ‘소나’는 불타의 가르침에 감동해서 스스로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다.
    고통을 감내하며 수행에 노력했음에도 집착과 번뇌를 부술 수 없어서 집으로 되돌아가려고 망설일 때
    석가세존께서는 그 마음을 관찰하시고, 소나를 불러 가르침을 주셨다.
    “소나여 악기의 소리는 그 줄이 지나치게 팽팽하지도 않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고,
    적절하게 당겨졌을 때 아름다운 음색이 나오는 것이다.“고 하시며,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의 노력도 너무 서둘러도 안정되지 않고, 느슨해서는 마음이 나태해져서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
    항상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보고 안일에 마음이 끌려가지 않도록 노력을 계속하며 길을 닦아야 한다고 중도의 가르침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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