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여원을 창립하신 이토신죠(伊藤眞乘 : 1906∼1989)는 1936년 종교 한길로 들어가 교토에 있는
제호사(醍醐寺)로 출가, 득도하셨습니다.
1935년 개조께서는 가마쿠라(鎌倉) 시대의 불사(佛師) 운케이(運慶)가 새겼다고 하는 불상(佛像) 대일대성부동명왕(大日大聖不動明王)을 모시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당시 항공 엔지니어였던 이토신죠는 아내(영조)와 함께 불도(佛道)로 들어갈 결의를 합니다. 다음 해 1936년 진언종 제호파 총본산인 제호사에서 득도수계를 받으시고, 1939년 재가승려로서 최고의 수행인 혜인관정(惠印灌頂)을 마치신 후 1943년에는 출가승려로서 최고의 수행인 금태양부전법관정(金胎兩部傳法灌頂)을 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출가, 재가 모든 수행을 계승하셨습니다.
출가한 승려뿐 아니라 재가의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신 개조께서는 대반열반경을 소의로 하는 진여원을 설립합니다. 그와 동시에 명상수행의 하나인 ‘접심수행’을 확립하고, 불교지도자인 교사를 육성하며, 전세계에 수행의 거점을 설치하게 됩니다.
토모지(友司)님은 개조와 결혼, 유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의 앞길은 평범한 직장생활이 아니라 사람구제에 있음을 투시하여, 가르침의 길로 들어설 것을 주창하셨습니다.
가문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영능을 상승하신 영조께서는 어려움도 많이 겪었으나, 구제를 바라는 신도들을 위해 진력하고, 부엌설법 등으로 개조의 뜻과 부처의 마음을 몸으로 직접 나타내시며 철저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영조께서는 접심수행의 기반인 진여 영능의 어버이로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 그대로 섭수심원(摂受心院 : 쇼쥬신인)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하기 쉽게 일상생활에서 몸으로 나타내 주셨던 법모(法母) 입니다.
개조와 영조는 1967년 바티칸에서 가톨릭 교황 바울 6세와 ‘부처님의 가르침도, 신(神)의 가르침도 구하는 것은 하나, 인류평화와 행복’ 이라며 굳은 악수를 교환한 것을 비롯하여 태국의 상좌부 사원 와트파크남 등 제종교, 제종파와의 교류를 거듭해 왔습니다.